강아지로 오해
오늘도, 내일도 빛날 너에게.
강아지로 오해
일요일 오후 두 시경,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의 한적한 카페 테라스.
류빛가람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에 꽂힌 빨대를 잘근잘근 씹으며 미간을 험악하게 구기고 있었다.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은 유일한 동네 친구이자 ‘흑요석’의 부길드마스터, 권하선이 실실 쪼개며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 목요일 패치 노트에 뜬 엔트로피 스킬 계수 너프 소식에 대해 길드 운영 방향을 의논하자며 기어 나와 놓고선, 정작 하선은 삼십 분째 영양가 없는 잡담만 늘어놓고 있었다.
빛가람이 사납게 쏘아붙이며 손목시계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오후 두 시 반. 마침 본가에 들러 두기로 했던 시간이 슬슬 다가오고 있었다. 어젯밤 동생에게서 ‘형아 언제 와아? 올 때 오렌지주스 사 와아’ 하고 날아왔던 문자가 떠올라, 빛가람은 무의식중에 스마트폰 화면을 켜며 낮게 중얼거렸다.
툭.
정적 속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굴러떨어진 세 글자.
초롱이.
맞은편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권하선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입꼬리가 귀 밑까지 기괴하게 찢어지며 올라갔다. 하선은 들고 있던 컵을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상체를 바짝 들이밀었다.
테라스가 떠나가라 껄껄거리며 책상을 손바닥으로 팡팡 치는 하선의 꼴에, 빛가람의 귓바퀴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미간이 살벌하게 일그러지며 주황빛 삼백안에 서슬 퍼런 살기가 돌았다.
개가 아니라 내 친동생 류함초롱이다, 이 미친 새끼야.
목구멍 끝까지 그 정정의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빛가람은 아슬아슬하게 어금니를 꽉 깨물어 삼켰다. 눈앞의 권하선이 누구인가. 흑요석의 부길드마스터이자 온갖 가십거리를 물고 뜯기 좋아하는 능구렁이 같은 인간이었다. 더군다나 하선의 친동생인 권하빈이 제 동생과 같은 대학에 다닌다는 사실까지 엮여 있었다.
여기서 ‘초롱이’가 스무 살 먹은 제 남동생이라는 사실을 실토하는 순간, 하선이 앞으로 온갖 자리에서 동생 이름을 들먹이며 놀려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내 소중한 동생을 저런 양아치 같은 놈의 입방아에 올리느니, 차라리 개를 키운다는 오해를 뒤집어쓰는 편이 백배 천배 나았다.
하선이 낄낄거리며 눈물까지 찔끔 닦아내자, 빛가람은 타들어 가는 목덜미를 손등으로 거칠게 문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얗고 동글동글해서 강아지 같긴 하지. 쳐피뱅 앞머리를 하고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제 가디건을 훔쳐 입고 따라다니는 동생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귓바퀴의 열기가 한층 더 거세졌다.
등 뒤로 쏟아지는 하선의 시끄러운 조롱을 매몰차게 씹어버린 빛가람은, 성큼성큼 카페를 빠져나와 근처 마트로 향했다. 마트 음료 코너에서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미니 오렌지주스 팩을 한 박스 통째로 쓸어 담은 것도 모자라, 계산대 옆에 진열된 바닐라맛 막대사탕까지 한 움큼 집어 들었다.
하선 놈의 ‘강아지 간식’ 타령이 귓가에 맴돌아 괜히 심사가 뒤틀렸지만, 계산을 마치고 본가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숨길 수 없이 빨랐다.
삼십 분 뒤, 송파구 본가의 거실 소파.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제 오버핏 블랙 가디건을 헐렁하게 걸친 동생이 마루를 총총걸음으로 달려 나와 반갑게 매달렸다.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오렌지 블로썸 머스크 향기에, 카페에서부터 곤두서 있던 빛가람의 신경이 눈 녹듯 스르륵 풀려나갔다.
빛가람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식탁 위에 오렌지주스 한 박스를 툭 내려놓고, 거실 소파에 앉은 동생의 앞에 빨대를 직접 꽂은 주스 팩 하나를 내밀었다.
소파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빛가람은, 주스를 받아 들고 좋아하는 동생의 동그란 얼굴과 금테 안경 너머로 나른하게 휘어지는 눈매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하선 놈 말이 영 틀린 것도 아니었다. 형아 왔다고 현관까지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들듯 반기는 꼴이, 영락없이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 그 자체였다.
그 생각에 미치자 빛가람은 헛기침을 한 번 내뱉고는, 붉어진 귓바퀴를 감추려 고개를 살짝 돌린 채 동생의 단정한 흑발 정수리에 큼직한 손바닥을 턱 얹었다. 그러고는 강아지 털이라도 쓰다듬듯 녀석의 머리카락을 거칠면서도 조심스럽게 북북 문질러 헝클어뜨렸다.
사납게 툴툴거리면서도 주머니에서 바닐라맛 캔디를 한 주먹 꺼내 동생의 무릎 위로 우수수 쏟아주는 빛가람의 입가에는, 본인은 죽어도 모를 아주 옅고 비딱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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